지하철 난투극_04 by 숀타나

지하철난투극과 패륜녀에 대해서 잡담

예전 일이지만 통학을 위해 꽤 오랫동안 장시간씩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정말 온갖 비매너와 인간군상들을 목격한듯.

보통 내 일이 아니라면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 말던 신경쓰지 않으므로 그들이 나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그 민폐꾼들의 패악질과 아주 가끔이지만 그 패악질로부터 비롯된 싸움을 구경하는건 지루하고 피곤한 통학길의 피로함을 조금씩이나마 덜어주는 활력소가 되었지만..

그래도 가끔 도가 넘는 패악질은 실실 웃으며 그 꼬라지들을 관찰하던 내 얼굴을 굳게 만들곤 했었는데 여기서의 주제인 진상떠는 노인네들의 사례 몇 가지만 소개해봄.




1.

저녁시간 4호선 오이도행 열차였는데 노약자석에 두 자리가 났다.
그 주변에 자리라곤 새로 생긴 그곳밖에 없었지만 난 노약자석은 양쪽으로 4칸 이상 비워진 상태가 아니라면 앉지 않는다. 매일같이 지하철에서 수십 분씩 서서 있는건 아무리 단련이 됐더라도 다리가 저리기 마련이지만 일부러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이 빠지는 4호선 아래쪽의 마지막 환승역인 금정역에 잠시 후면 도착하기 때문에 좀만 더 참자 하고 그 노약자석 근처에서 서서 아침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교복입은 여학생 하나가 들어오더니 두리번 거리다가 비어있는 노약자석에 걸터 앉더라.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전철을 타고다니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그 학생도 그중 하나였다.

다음역에서 왠 나이 지긋해 뵈고 등산모에 손에는 등산용 지팡이를 든 할배 하나가 들어왔다. 노약자석 쪽을 보더니 그 여학생 앞까지 뚜벅뚜벅.. 난 남은 빈자리 한곳에 앉겠지 하면서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으흐흠.." 하는 헛기침 소리가 한번 울린다.

노인네가 자리가 있음에도 뜸을 들이는걸 보고 대충 그 여학생의 운명이 짐작이 되었다. '쯧쯧. 불쌍한... 그러니까 왜 자리도 별로 없는데 노약자석에 앉아서는..'

그러나 두 번째의 헛기침을 울리고도 학생의 반응이 없자, 이어진 노인네의 반응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들고 있던, 꽤나 묵직해 보이는 재질의 등산용 지팡이로 그 여학생의 머리통을 "딱!" 소리나게 후려 갈긴 것이었다.




그건 분명 꽁 쥐어박는 수준 이상이었다. 끽해야 훈장질 몇번 하고 끝이겠거니 하고 짐작하던 난 깜짝 놀랐고 주변 노약자석과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 모두 경악의 눈길로 바라보는 동안 여학생은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고, 미처 그 학생이 무슨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노인네는 입을 열었다.

"어른이 계신데 어디서 배워먹은 짓거리야. (여학생 어깨를 위로 끌어올리며) 비켜!"

그 학생은 넋이 나간듯한 얼굴이었다. 맞은 부위를 감싸쥐며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일어나는데 솔직히 좀 불쌍해 보이더라. 잠깐 누군가 백기사처럼 짠 하고 나타나는건 아닌가 싶었는데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보니까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도 않았던것 같고. 애초에 그걸 본 사람 자체가 얼마 안됐을것 같다.

그 학생은 맞은편 입구쪽에 서서 기다리다 바로 다음역에서 내리더라. 내가 기억하기론 보통 금정역에서 내렸었는데.. 도착하기도 전에 내려버린 것이다. 마침 내가 내리는 입구 쪽에 서있었던 관계로 내릴때 잠깐 옆모습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분명 울고 있었다.

그 사이 노인네는 아무렇지도 않게 라디오를 꺼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듣고 있었다. 마치 지 할일을 했다는듯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2.

역시 비슷한 시간대였고, 노약자석 자리 문제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노약자석에 자리 하나가 나왔고, 문이 열렸는데 순간 들어온 어떤 할매와 할배가 그 자리를 향해 돌진하다가 바로 앞에 두고 멈칫 하더라. 일행인줄 알았는데 한명이 하는 소리가 참 골때렸다.

할매 쪽이 먼저 입을 열더라. 아저씨 몇살이냐고. 할배 왈 60대란다. 그랬더니 할매는 아 내 나이가 일흔 몇인데(사실 그렇게 많이 먹어뵈지도 않았는데..) 내가 더 나이 많으니 여기 앉겠다고 하더라.

할배는 허허 거리더니 뭐라뭐라 했다. 곧 둘의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져 갔고, 이내 그 칸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돌아볼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 시작했다.

어린놈의 자식이 어른을 공경할줄 모른다느니(!), 니가 여기 전세냈느냐니 하다가 급기야는 쌍두문자까지 왔다갔다 하고, 부모까지 들먹이는건 내게 하나의 컬쳐쇼크로 다가왔다.

거의 대다수가 늙은이가 젊은이에게 부리는 패악질이었지만 자리 때문에 노인과 젊은사람이 갈등을 빚는건 여러번 봤어도 내 살다살다 반백발한 노인네 둘이서 자리갖고 서로 투닥투닥 싸우는건 난생 처음이었다.

꼬라지는 마치 유치원생 둘이서 사탕 가지고 이거 내꺼야 하고 싸우는 꼴인데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내가 더 어른'이니 뭐니 하는거 보고 웃는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저곳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렸는데 두 노인네는 귀가 먹었는지 하나가 내릴때까지 끝까지 싸우더라.

참 지금 생각해도 할말이 없다.





3.

아침 6시 반쯤이었다.
출근 시간대에 유난히 칸 이동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가끔 지나가는 사람이 문을 닫지 않고 가는 경우가 있다.
보통 그럴땐 노약자석 근처에 있는 사람이 일어나 문을 닫기 마련인데 이날 본 노인네는 좀 특이했다.

노약자석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노인네가 지나가던 여대생 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문을 닫지 않고 지나가자 엉덩이를 발로 팍 차버리는 것이다. (...)

여자가 돌아보자 노인네는 으르렁거리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문닫어."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어이가 없었지만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것 같아 계속 그쪽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몇분후 또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이번엔 중년의 아저씨였다. 그것도 키는 180 가까에, 가죽재킷까지 껴입은.. 딱 보더라도 '한 주먹하게 생긴' 그런 아저씨였다.

과연 저 사람은 문을 열어놓고 갈지 안그럴지 무지 궁금해지는 가운데 중년의 아저씨는 문고리를 잡아 돌렸고, 다음 순간 그 사람의 반대쪽 손은 열어재낀 문이 아니라 반대쪽 문에 가 있었다. 반대쪽 문 역시 힘차게 열어젗혀졌지만 그 사람이 지나간 뒤에도 양쪽 문은 닫히지 않았다.

미동이 없는건 문 뿐만 아니었다. 노인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젊은 여자가 문을 닫지 않고 지나갔을땐 무려 득달같이 달려들어 엉덩이를 걷어찼던 사람이 젊은 사내가 똑같이 하고 지나갔을땐 그토록 얌전해질줄은 미처 몰랐다.





뭐, 쓰고보니 그렇게 얼굴 굳어버릴만한 사례들은 아닌것 같지만 일단 기억나는게 이정도라 몇자 끄적끄적 해봤다. 장유유서 엄격한 집에서 자라 지금같이 노인들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줄은 나도 몰랐는데 오랫동안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저치들 패악질의 희생양이 몇번 되어보면서 나도 이렇게 변한듯.

못배워먹은 노인네들 패악질을 지긋지긋할 정도로 보고, 때론 거기 당해왔었기 때문에 이번 일에서도 10대의 손을 들어줄수 밖에 없겠다. 듣기로 지하철 난투극 사건도 10대가 먼저 사과를 했음에도 70대는 제 분에 못이겨 상대방 패드립까지 치고, 그 지경까지 갔다지.

저 뉴스를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안도감'이었다.
장소가 버스였다는 점이 다를 뿐, 가장 최근인 몇달전 내가 당했었을때도 같았다. 늙은이에게 별 시덥잖은 이유로 시비를 당했고, 기분이 좆같았음에도 먼저 사과를 했지만 기어이 부모욕까지 먹었고, 이후 난 이성을 잃었다.

이후 벌어진 광경이 폰카에 찍혀 퍼졌다면 이번 난투극에 버금가는 반향을 일으켰을듯..

애초에 오래전 이 나라에 들어왔던 유교사상 자체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차 왜곡되어 나이많은 것이 곧 벼슬로 통해왔었지만 그런 왜곡된 사회통념이 적용되던 전통시대는 이미 지났음에도 각성하지 못하는 일부 노인네들의 짓거리의 반성이 필요한듯 하다.

그 사람이 어떤 대접을 받고 어떻게 평가받느냐를 달리 만드는건 그 사람의 행동거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내가 욕먹을짓 했으면 분명히 욕먹는다. 마찬가지로 나이 드신 분들도 욕먹을짓 하면 욕먹어야 하는 것이지, 단순히 나이 먹었다고 해서 '예의없는' 연장자의 잘못마저 동방예의지국이란 미명 아래 정당화될순 없단 말이다.

연소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연장자에 대한 일방적인 예의(라고 쓰고 복종이라 읽는다.)만 강요하는 횡포는 없어져야 마땅하고, 이젠 단순 나이가 많은것 외에도 그 살아온 세월만큼의 '나잇값'을 하지 못한다면 더이상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적 풍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이제 젊은이들의 공경을 원한다면 먼저 공경받을수 있게끔 행동하는것이 필요함에도 나이 하나만을 무기로 내세워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예의를 강요하는 늙은이, 예의란게 상호존중이란 없이 한쪽으로 치우쳤을때만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늙은이들에게 필요한건 노인공경이 아니라 노인공격이라고 본다.




p.s 혹시나 글 보고 '나중에 니가 그렇게 당할거다.' 라고 하실 분들은 조용히 뒤로가기 버튼 눌러주시길.
난 그렇게 안되게끔, 대접받을수 있게끔 곱게 늙을 거니까.

트랙백


덧글

  • 숀타나 2010/10/30 17:57 # 답글

    이런 사례들에서 볼 수 있는 '비뚤어진' 노인분들의 행동의 뿌리에는 과연 어떤 생각과 기억과 경험이 자리잡고 있을까?
댓글 입력 영역